[전병욱 칼럼] 흑암 속에 숨겨진 보물

사람들은 흑암의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흑암을 나쁜 것, 피할 것, 빨리 벗어나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흑암에서 보물이 나온다.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 45:3) 흑암 속에서 보물을 얻기 위한 길은 무엇인가?

첫째, 땅을 파헤쳐야 한다. 표면에 보물이 있으면, 누구나 취할 수 있다. 눈치 빠른 사람, 머리 잘 도는 사람이 먼저 취하게 될 것이다. 목회를 하다보면 느끼는 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눈치가 없다. 모든 것이 세상 사람에 비해 느리다. 뒷북의 천재들이다. 항상 아차하면서 한숨을 쉰다. 세상과의 경쟁해서 이길 것 같지 않다. 표면에 있는 보물은 믿는 자가 먼저 볼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 속에 숨겨 두신 것이다. 왜? 성도에게는 ‘파헤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 인내, 묵상의 훈련이 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삽’이 있다. 기도의 삽으로 땅 속의 보화, 흑암의 보물을 파내라. 그래야 내 것이 된다.

둘째, 원석은 아름답지 않다는 점이다. 힘들여 파낸 원석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단순한 흙덩이같이 보인다. 원석은 세공이 필요하다. 숙련된 사람들이 세공하면, 거기서 가치가 나온다. 좋은 보석이 되려면 원석이 좋아야 한다. 동시에 누가 세공을 했는가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최고의 보석 업체 티파니 같은 곳에서 세공한 것은 다른 곳에서 세공한 보석보다 빛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갖고 싶어 하는 보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세공하라. 기회를 세공하라. 그러면 멋진 것이 된다. 5년 전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실력이 비슷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나타난다. 왜? 김연아는 특출한 세공이 있었고, 아사다 마오는 세공이 부족했다. 김연아의 표정연기, 눈빛연기는 바로 은사의 차이라기보다는 세공의 차이이다. 세공하라. 가치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셋째, 큰 압력이 보석을 만든다. 돌들은 흑암 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 그것이 보석이 되는 요소이다.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인 예이다. 다이아몬드는 원래 탄소 덩어리다. 그런데 큰 압력을 받으니 다이아몬드가 된 것이다. 엄청난 압력이 최고의 강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압력이 없으면 숯덩이가 된다. 압력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다. 살다보면, 절망의 압박 속에서 눌릴 때가 있다. 이때 용기를 내라. 내 속에서 아름다움 보석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눌림이 한 단계 높은 신앙과 인격을 만들어 낸다. 다윗도 눌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 32:4) 내 진액이 좀 빠져야 한다. 그래야 보석된다.

오늘은 국민일보 창간 21주년이다. 흑암 속에서도 보석같이 빛나는 신문이 되었다. 파헤침, 세공, 압력을 통해 다이아몬드같이 더욱 빛나는 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by 로스 | 2009/12/10 09:53 | 전병욱 칼럼 | 트랙백 | 덧글(0)

[전병욱칼럼] 낮은 승률로 이기려면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여 친구같이 이야기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11) 영적인 능력은 모세와 여호수아는 비교가 안 된다. 모세는 탁월한 영적 선배이다. 모세는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경험도 적고, 능력도 부족하고, 모든 부분에서 모세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한다.

여호수아의 강점은 회막에 머무르면서 더 많이 기도한 것이다. 모세의 능력은 대단하다. 잠깐 기도해도 하나님이 대면해 주시는 능력이 있다. 능력이 부족한 여호수아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보냈다. 모세는 진으로 돌아갔으나 여호수아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보다 모든 면에서 우세하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다. 재량권도 많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와 똑같이 하면 절대로 능가할 수 없다. 뭐든지 더해야 한다. “담임목사는 떠나도 부교역자는 남아 기도하더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이 되고 전성기가 온다. 담임목사는 여러 가지로 바쁠 수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부교역자가 더 많이 기도하면 영적 능력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것을 부흥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다는 말은 승리의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10%의 승률을 가진 사람이 50%의 승률을 가진 사람과 대등해지는 길은 무엇인가? 5배로 뛰면 된다. 능가하는 길은 10배로 뛰면 된다. 승률은 중요하지 않다. 더 열심히 뛰면 되는 것이다. 기도에는 제약이 없다. 1시간 이상 기도하면 안 된다는 규율도 없다. 무한대로 기도할 수 있다. 부족하면 여호수아같이 끝장 보는 기도를 하라.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허전할 때가 있다. 내적으로 텅 비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무력감이 느껴지고 공허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더 많이 기도하라. 기도의 힘이 보충되면 허전함이 사라지고, 말씀에 힘이 붙기 시작한다. 모든 일은 120%의 힘을 가지고 해야 한다. 힘이 남아돌아야 한다. 뒷심이 달려서는 안 된다. 넉넉하게 일하고, 압도적으로 일하려면, 좀 과도하게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세도 피곤해서 돌아갔다. 여호수아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리가 없다. 그때가 중요하다. 누구나 피로를 느낄 때, 조금 더 기도의 자리를 지키라.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을 능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자기 마음의 한계를 깨버리고, 조금 더 부르짖으라. 기존의 벽을 뛰어넘는 젊음의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전병욱 삼일교회 목사

by 로스 | 2009/12/03 10:50 | 전병욱 칼럼 | 트랙백 | 덧글(0)

비 어록

<비 어록 몇가지>

1. 끝없이 노력하고, 끝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겸손하자. - 좌우명

2. 지금자면 꿈 꿀 수있지만 지금 안자면 꿈을 이룰 수 있다.

3. 불안하면 연습하라.

4. 120%를 준비해야지 무대에서 100%를 발휘할 수 있다.

5.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

6. 모든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전 "떳떳해요"

7. 잘못하더라도 최선을 다 해보고 못하자

8.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출처] 비 어록|작성자 루시아

by 로스 | 2009/11/27 20:23 | 좋은생각 | 트랙백 | 덧글(0)

[전병욱칼럼] 이미지만 좋게해서야

사람들은 이미지에 관해서 관심이 많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무지하게 애를 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이미지가 사라져서 전도가 힘들다고 한다. 일면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과연 교회가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는가? 성도의 삶의 에너지를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심는 데 집중하는 것이 맞는가?

얼마 전 필리핀에 태풍이 불어서 한 도시가 거의 쑥대밭이 되었다. 그곳에 간 사람은 말해 주지 않아도 태풍이 지나간 것을 다 안다. 강력한 능력은 설명 안 해도 아는 것이다. 성도와 교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면, 뜨겁게 탈 것이고,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아도 그것을 안다. 살아 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는 주변 불신자가 더 먼저 안다. “저 교회는 지독하게 기도하는 교회야, 저 교회는 기회만 되면 선교하는 교회야”라고 말한다.

신문을 보면 요즘에는 학교도 광고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또 그 학교에 들어가면 어떻게 길이 열리는지를 홍보한다. 그런데 광고를 많이 하는 학교치고 명문 학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미지 관리로 좋은 학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좋은 학교는 광고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안다. 머리를 싸매고 줄서서 가려고 한다.

종종 맛집을 간다. 맛집들은 조금 불친절하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실내 장식도 그리 신경 쓴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맛이 있으니 모든 것을 감수한다. 맛집은 이미지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 맛집은 맛이라는 능력으로 승부를 건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린다는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의사에게는 광고하지 않아도 입에 입으로 알려져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의사를 만나려면 3년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지가 아니라 능력이다. 이미지가 아닌 실력을 길러야 한다.

캘리포니아 동부에 있는 세쿼이아 산에 갔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와 제일 오래된 나무가 있는 산이다. 보통 2000년에서 3000년이 되는 나무가 많이 있다. 이런 거목이 존재하는 이유는 고난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산 위에는 엄청난 바람이 분다. 세쿼이아 나무는 100그루, 200그루의 나무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동시에 200그루의 나무를 뽑을 정도의 힘이 아니면 뽑히지 않는다. 또 이 산에는 10년 주기로 자연 산불이 난다고 한다. 나무에 불이 붙어도 겉의 이끼와 낙엽을 태워서 오히려 비옥함의 유익을 누린다고 한다. 세쿼이아 나무가 죽는 경우는 딱 하나 벼락에 맞아 쓰러지는 경우뿐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는 고난을 극복하는 실력에서 나온 결과이다. 산 밑의 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큰 나무가 없다. 오히려 열악한 조건 속에서 거목은 자라난다. 고난 없는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고의 진리이다.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by 로스 | 2009/11/26 09:34 | 전병욱 칼럼 | 트랙백 | 덧글(0)

[전병욱 칼럼] 두려움 떨쳐낸 아픔

성도 중에 죄 짓고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타협하면서 초라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굴복하고, 왕따의 위협 앞에 넘어진다. 왜? 두려움 때문이다. 한번 두려움에 빠지면,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한번 두려움에 빠지면, 무엇을 가르쳐줘도 배울 수 없다.

십자가 이후에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이다(요 19:38∼39).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였다. 그러나 유대인이 두려워서 숨어서 믿었다. 그런데 빌라도에게 공개적으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게 해달라고 한다.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왔던 사람이다. 숨어서 찾아온 사람이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몰약과 침향을 가져왔다. 십자가 이후에 공공연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공포한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는 숨어 있었다. 권능을 행할 때도 숨어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따를 때도 숨어 있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쳤다. 과거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두려움을 이기고, 공개적으로 신앙을 드러내었다. 왜? 그들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아픔을 보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처참함을 보았다. 창에 허리를 찔리어 물과 피를 흘린 것을 보았다. 원망이 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아픔을 본 자는 담대함이 생긴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과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아픔을 느낀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움에 종노릇하지 않는다.

아픔을 통해서 두려움을 이긴 자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매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장애인이다. 아버지는 척추장애인이고,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다. 아버지는 키 작고 등이 나온 분이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하는 분이다. 그런데 딸은 예쁘고 공부 잘하는 유망한 자매였다. 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 같지 않은 분위기와 풍모가 있는 자매였다. 이 자매는 부모님만 생각하면 위축되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이 있었다. 장애 부모 때문에 몇 번의 혼담도 중간에 깨진 경험이 있었다. 부모님이 마음이 아파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우리 때문에 딸 시집도 못 보내겠다. 작은집으로 입양시키는 것이 좋겠다. 우리 같은 몸으로는 결혼식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지.” 부모님은 이 말을 하다가 통곡을 하였다. 자매는 이 대화를 들으면서 부모님의 아픔을 보았다. 뛰어들어가 자신이 잘못했음을 고백하고, 부모님을 껴안았다. 부모님의 아픔을 본 순간, 위축됨과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다 사라졌다. 남자 친구에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예상외로 쉽게 이해해 주었다.

3개월 후 남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믿음이 좋은 분들이었다. 어려운 조건에서 꿋꿋하게 성장한 것을 보면 인물이라고 오히려 칭찬해 주었다. 이런 며느리가 들어오면 우리 집안의 복이라고도 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결혼하여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슬픔을 아는 사람만이 두려움을 이긴다. 머뭇거리고 위축된 삶을 사는가? 슬픔을 아는 자가 되라. 두려움은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by 로스 | 2009/11/19 07:04 | 전병욱 칼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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