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이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이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명명 이전의 상태-무의미한 존재(인식되지 않은 존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의미 부여의 순간-의미 있는 존재(의미를 부여받은 존재) ⇒ 1연∼2연:과거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의미 부여의 소망-본질 부여에 대한 근원적 갈망(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은 '나')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진실된 관계의 소망-존재 의미를 인정받고 싶은 '우리'

▷▷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탐구 ⇒ 3연∼4연 현재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



♣ 감상의 길라잡이

이 시는 흔히 연애시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실상에 있어서는 김춘수 초기시의 특징인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존재의 의미를 조명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의도를 가진 작품으로 주체와 대상이 주종(主從)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주체적인 만남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작품의 1연에서는 '그'의 구체적인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몸짓'이라고 하는 정체 불명의 '무의미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2연에서 '내'가 대상을 인식하고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의 존재는 드러나고 있다.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고 이름을 부를 때, 존재의 참모습은 드러나고 '꽃'이라고 하는 의미있는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3연에서는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渴望)이 나타나 있다. 주체인 '나'도 '너'에게로 가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빛깔과 향기'에 적절한 이름 즉 그 본질을 밝혀주는 이름이 불려질 때, '나'도 '꽃'이 되는 것이다. '꽃'은 '의미 있는 존재'를 상징한다. 4연은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것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와 '그'는 고립된 객체로서가 아니라 참된 '우리'로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진정한 '관계 맺음'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핵심 사항 정리

갈래 자유시, 서정시

성격 관념적, 철학적, 주지적, 상징적, 인식론적

심상 비유적, 상징적 심상

운율 내재율

어조 명상적, 갈망적 어조, 사물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려는 관념적, 철학적 어조

표현 의미의 점층적 확대(단계적인 의미의 심화 과정). 나→너→우리, 몸짓→꽃→눈짓

제재 꽃

주제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삶의 확대를 위한 관계 형성의 소망.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탐구



♣ 시어·시구 연구 및 분석

#. 이름-허무로부터 존재를 이끌어 내 줄 수 있는 본질을 규정하는 것. 꽃-이름의 명명을 통해 존재성을 갖게 된 본질. 빛깔과 향기-본질적인 요소. 무엇-본질에 맞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어떠한 존재를 지시. 의미-'꽃', '사랑' 등 여러 번의 퇴고를 거친 시어로 존재의 본질을 뜻한다.

#. 내가 그의 이름을∼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때, 즉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에는 그는 나에게 무의미한 사물에 불과했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존재를 깨닫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는 비로소 '꽃'이라는 형상물이 되어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내가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와 본질에 맞는 의미를 부여하였듯이

#. 빛깔과 향기 ; '빛깔'과 '향기'는 사물에 내재된 참된 가치와 본질을 의미한다.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누군가에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의미 없는 존재, 즉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無)의 존재에서 본질에 따라 가치를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

#. 너는 나에게∼의미(意味)가 되고 싶다 ;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를 소망한다.



♣ 생각해 봅시다.

1. 이 시의 시상 전개에 대하여 살펴보자.

▶ 몸짓 - 꽃 - 의미

2. 이 시에서 '꽃'의 상징적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사물의 존재(구현된 존재의 본질). 의미 있는 존재

3. '몸짓'과 대조의 관계에 있는 시어를 찾아보자.

▶ 꽃, 무엇, 눈짓

4. 이 시에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자.

▶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일

5. '몸짓'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무의미함. 낯설음. 혼돈 상태. 미지의 상태

6. 이 시에서 사물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으로 표상되었는가?

▶ 꽃

7. 시인의 의식 세계가 응결되어 나타난 연을 찾아보자.

▶ 제5연

8. 이 시에서 의미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 나에서 우리로 확대

9. 이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나'와 '너'의 시이의 '이름 부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 서로의 빛깔과 향기를 올바르게 아는 것



♣ 비교해 봅시다.

1. 다음 글은 박이문의 '길'의 일부이다. 밑줄 그은 ⓐ,ⓑ,ⓒ에 대응되는 시어를 찾아보자.

▷ 인간을 자연과 우주로, 나를 남과 사회로 열어 주는 길들은, 자연과 우주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여 뜻있는 것으로 하며, 나와 남과의 사이에 사회의 질서를 세워 진정한 뜻에서의 인간적 세계를 창조한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이, ⓐ사물로서의 존재가 ⓑ빛을 받아 ⓒ원래의 은폐(隱蔽)성에서 밖으로 뜻을 가지는 존재로 나타나게 되며, 동물로서의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는 인간으로서 승화(昇華)하게 된다.

▶ ⓐ - 몸짓, ⓑ - 이름, ⓒ - 눈짓(꽃)

2. 이 시와 '꽃을 위한 서시(序詩)'에서, '나'가 '너'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 '꽃'에서 인식의 주체인 '나'는 객체인 '너'를 인식함으로써 그것은 의미 있는 존재로 드러난다. 그러나 '꽃을 위한 서시'에서 '나'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해도 '너'는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 이것만은 알아야

1. 이 시에서 '나'와 '그' 사이의 관계가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 몸짓 → 꽃 → 의미

2. 이 시의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진정한 관계 맺음에 기초한 삶의 확대에 대한 소망.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3. '빛깔과 향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참된 가치와 본질

4. 이 시에서 명명(命名)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 보자.

▶ 존재의 본질을 밝혀 그것을 인식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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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주지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관념적. 주지적. 상징적. 인식론적

어조 : 갈망의 목소리

표현 : 의미의 점층적 확대

나 → 너 → 우리

몸짓 → 꽃 → 눈짓

구성 :

1연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의 무의미한 존재

2연 명명에 의한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옴

3연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 갈망

4연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제재 : 꽃

주제 :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소망

출전 : <현대문학>(1952)




이해와 감상

이 시에 등장하는 ‘그’는 ‘몸짓→꽃→의미’로 변화하고 있다. 1연에서 ‘그’는 다만 한 ‘몸짓’이었고, 정체 불명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2연에서 ‘나’의 부름에 의해 비로소 ‘그’는 정체를 밝히며 ‘꽃’으로 다가온다. 3연은 존재의 본질 구현에 대한 근원적인 갈망(渴望)이 나타나 있다. 주체인 ‘나’도 대상인 ‘너’에게로 가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4연에서 ‘그와 나’는 ‘우리’로 확대되어 있다. ‘나와 너’의 존재론적 갈망이 ‘우리’라는 모든 존재의 소망으로 확대된 것이다.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의미를 인식하는 행위이며,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작가는 이 시에서 서로에게 의미 있는 진정한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를 존재론적 탐구의 시가 아니라 단순한 연시로 감상할 수도 있다. 단순하고 정제된 형식은 이 시의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참고> ‘꽃’에 나타난 작가의 존재론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애송되는 시이다. 너와 나를 연인 관계에 놓인 사람으로 대치하여,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평범한 연애시의 범주에 안주하고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이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인간 존재의 본질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의미 없는 것에서, 상호 인식을 통하여 의미 있는 것, 또는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진리를 형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런 존재 인식의 수단을 언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언어를 ‘존재의 집’으로 파악한 것이다. 여기서 언어라는 것은 단순한 일상어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어의 가장 정제된 형태로서의 시적 언어를 가리킴은 물론이다. 아울러 이 말은 인간이 시 또는 시적 언어를 통하여 자기 존재를 표현한다는 말이다.


출처 : http://solbit.net http://myhome.naver.com/qseo


by 로스 | 2008/05/04 15:43 | 시의 향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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